은평한옥마을의 전경과 '다온정' 소개!
● 은평의 역사와 문화, 한옥의 미래가 머무르는 공간
- 은평역사한옥박물관은 은평의 역사가 담긴 지역 고유의 생활방식과 문화유산을 보존하여 구민과 학생들에게 지역문화에 대한 이해와 긍지를 심어주고,
은평구의 정체성을 살려 애향심을 갖게 하고자 건립되었다.
은평역사한옥박물관의 주요시설인 상설전시실은 은평의 역사와 뉴타운발굴 유물이 전시된 은평역사실(2층)과 실제 한옥과 한옥의 건축과정 및 한옥의 과학성,
자연 친화성 등이 전시된 한옥전시실(3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외 기획전시실, 작은도서관, 체험학습실, 교육실, 희망장난감도서관 등의 부대시설이 있으며, 외부는 다양한 이동선을 따라 통일신라시대의 기와가마터를 비롯한 석물전시장과 옥상정자인 용출정이 설치되어 있어 관람객들이 전시 관람과 휴식을 동시에 접할 수 있는 개방형 구조로 되어있다.
● 은평의 문화시설을 연계해주는 문화체험특구 공간
- 너나들이센터는 은평한옥마을 입구에 위치하였으며
건축면적 330㎡, 연면적 380㎡로 지하1층, 지상2층의 규모로 조성되었다. 2016년도부터 조성을 시작하여 2018년 4월에 개관되었으며 '은평 북한산 한국문화체험특구'를 알림과 동시에 은평한옥마을에 대한 정보와 이해를 돕기위해 개관되었다.
문화시설을 연계하는 거점 역할을 하고있으며 전시1실에는 김은희 화가의 <우리가 사는 한옥>, 전시3실에는 강종순 한복연구원장의 <화>가 전시중이며, 체험1실에서는 한복대여체험도 진행 중인 동시에 한복 천연염색에 대해서도 알아 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있다.
위치 : 은평역사한옥박물관 옆
운영시간 : 화요일-일요일 09:00~18:00
(매주 월요일 및 1/1일, 설-추석연휴 휴관)
● 문학의 기인들, 삶을 돌아볼 수 있는 문화체험 공간
- 은평구 셋이서문학관은 은평한옥체험관을 리모델링하여 건립하였다.
이곳은 은평구민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문화공간이며 무료로 운영되고 있다.
천상병, 중광, 이외수는 모두 기인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특히 시인 천상병은 그의 대표시 '귀천'에서 삶을 '소풍'이라 표현하였으며,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다. 셋이서 문학관은 세 작가의 살아가는 방식을 그들의 작품을 통해 보고, 삶을 돌아보는 휴식과 문화체험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다.
관람시간 : 오전 9시 - 오후 6시
휴관일 : 매주 월요일
(당일 공휴일인 경우 익일 휴관, 1/1일 및 설-추석 연휴 휴관)
● 모두가 살고 싶어하는 은평한옥마을을 위한 공동체
- 은평한옥마을 공동체회관은 주민이 함께 참여하여 행복 마을을 만들어가기 위해 설립되었다. 전통 '두레'의 현대적 실현과 도농복함 마을 실현, 다양한 세대가 어우러지고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 노는 친환경 생태 마을 조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국립공원 북한산, 천년고찰 진관사와 어우러진 역사 문화 마을을 알리기위해 Guest House, 전통문화 체험, 진관사 연계프로그램 개발과 같은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또한 국토의 품격을 높이고 전통과 현대가 조화된 신 주거문화 창조를 위해 현대(신)한옥 모델/공법 실현과 표준화 국토부 R&D의 성과 실현을 이루어내고 있다.
소중한 문화유산 보존과 미래를 향한 발전을 위해 은평한옥마을 공동체회관은 소통의 역할을 해내고 있다.
● 1000년의 역사 <진관사>
- 1000년을 이어온 유명한 사찰로 현종이 어린시절 자객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준 진관대사에게 입은 은혜를 갚고자 진관사라는 큰절을 세우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고려시대에 여러 왕들이 진관사에 행차하는 등 왕실의 각별한 보허를 받았다. 조선시대와 근현대 시대를 거치면서 계속되는 전성기를 누리던 진관사는 6·25 당시 폭격으로 폐허가 되었다가 복구된 고찰이다.
● 산림생태계와의 조화 <진관사 계곡>
- 은평구 진관내동 북한산성 입구에 위치한 진관사 계곡은 산림생태계와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도롱뇽, 산개구리 등 서울시 보호종이 관잘되는 곳이다. 2011년 국립공원관리공단 북한산 국립공원사무소는 수환경 및 수서생태계 보호를 목적으로 은평구 진관동에 위치한 진관사 계곡을 북한산국립공원 특별보호구로 지정했다.
● 원효대사 창건, 승병들의 집결지 삼천사
- 삼천사는 서기 661년 원효대사가 개산하였다.
1481년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과 ≪북한지≫에 따르면 3,000여명이 수도할 정도로 번창했다고 하며 사찰 이름도 이 숫자에서 유래한것으로 추측된다.
1592년 (조선 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는 승병들의 집결지로 활용되기도 하였으며, 임란중에 소실 되었으나 뒷날 이 절의 암자가 있던 마래여래 길상터에 진영 화상이 중창하고 성운화상에 의해 거듭 중창 복원하였다.
경내에 있는 천년고불 마애석불은 고려시대 조성된 것으로 보물657호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